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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

자기 가문을 모으는 자

by 열린공간 2018. 6. 21.

자기 가문을 모으는 자

 

- 가원의 기틀을 놓은 사람은 거기에 자기 가문의 사람들을 모을 수 있고, 그런 위대한 행위에 대하여 그들은 그에게 감사한 마음일 거야. 수호천사처럼 이들이 가원을 지은 사람과 가원을 아끼고 지킬 거야. 삼라만상의 그 어느 것도 흔적 없이 사라지지 않아.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단지 옮아갈 뿐. 사람이 죽고 그의 육체가 흙에 묻히면, 그로부터 나무와 풀 그리고 꽃이 자라. 몸이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거야.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에너지 복합체 - 사람의 영혼은 무엇으로 변할까? 그것은 우선, 육신이 놓인 장소에 허공에 머물러. 이것을 알고 일부 종교에서는 육신을 바로 흙에 묻지 않아. 사람의 시신이 흙과 접하도록 묘지에 묻히고 나면, 영혼은 몸이 묻힌 장소 위에 떠서 머물러. 얼마간 친척지간의 사람들이 무덤 곁에서 머무르지. 몸을 잃은 영혼은, 청각 시각을 잃어 보거나 들을 수 없어. 하지만 그 영혼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거나 생각하면 느낄 수는 있어. 좋은 얘기를 하면 영혼은 기분 좋아 나쁜 얘기를 하면 나쁘고, 얼마 후 사람들은 묘지를 떠나지. 영혼은 자기 몸이 묻힌 봉분 위에 얼마간 머물러.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공허할 뿐. 매일의 일상에 바쁜 현대인들은 사망한 혈육을 쉽게 잊고 살지. 현대인들의 아파트에는 사망한 혈육에 대한 추억할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일 년, 오 년, 십 년이 지나면 그 누구도 망자에 대해 추억하지 않고, 망자의 혼은 완전한 공허에 처하게 돼. 지금 우리가 말하는 대상은 그나마 얼마 전 죽은 사람들이야. 하지만 백 년 전에, 천 년 아니면 백만 년 전에 살았던 혈육들도 있거든. 이들은 모두 완전한 망각에서 머무르고 있어.

가원을 짓는 사람은 온 가문을 집합할 수 있어. 자기 혈육에 대해 생각하고, 상상해보면 돼. 그러면 영혼이 화들짝 놀라고, 자기를 생각하는 것을 느껴.  우주의 어느 구석에 소재해 있던, 그 영혼은 이 생각의 빛을 따라 그 생각이 나오는 곳을 향해 돌진할 거야. 사람은 자기의 혈육 모두를 기억할 수는 없어. 또한 내내 혈육에 대해 생각하고 추억할 수도 없지. 하지만 사람은 조그만 숲을 가꾸어 나무를 심을 수는 있어. 가능하면 장수하는 가문의 나무를 여럿 심으면 좋지. 참나무, 잣나무도 그런 나무에 속해. 나무를 심으면서 <나의 가문의 모든 성원을 추억하는 뜻에서 이 나무 숲을 혹은 가로수 길을 심습니다. 내가 짓는 가원에 나의 가문의 모든 성원이 모이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에 살았거나 또는 미래에 살 사람들까지> 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함으로써 가문의 생각을 반드시 개시해야 해. 각각의 나무를 심을 때마다, 비교적 최근에 사망한 혈육 중 한 분의 이름을 떠올리고, 한 분 한 분을 상상하고 따뜻한 말로 그 분들을 추억해야 해. 사람들은 자신의 혈육을 매분, 매시간 추억할 수 없지만, 그러한 정보를 얻은 나무들은 자기 안에 그 정보를 매 순간 보존할 거야. 당신 혈육의 영혼들은 이것을 느낄 수 있어. 그리하여 당신 가원의 나무에서 풀에서 꽃에서 살 서야. 나무들에서 나오는 빛살은 사람한테서 나오는 것보다 훨씬 미약해. 대신 더 지속적이지. 혼들이 이것을 느끼고, 당신이 추억했던 가장 가까운 혈육들이 우선 이곳을 찾을 것이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도 점차 이곳을 찾아 올 거야.

구 년이 지나면 사람이 심은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룰 것이고, 그 나무들은 특별한 나무가 될 거야. 이 나무들은 강력하고도 복된 에너지를 품게 될 거야. 가문을 모으는 자와 그의 가장 가까운 혈육 이외에는 그 누구도 그 복된 에너지를 느낄 수는 없어. 상상해봐. 블라지미르, 사람이 하는 이 일이 얼마나 선하고 특별한 일인가! 그 사람은 마치 조물주와도 같이 여러 시간으로 흩어진 가문을 다시 모으는 거야.

 

- 아나스타시아, 당신이 말한 적 있어. 영혼은 에너지 복합체라고, 그중 어떤 것은 사람이 사망한 후 입자들로 와해되어 여러 다양한 벌레, 식물, 동물들에게 에너지를 준다고.

 

- 그래, 말한 적 있어. 블라지미르 그건 지구에 사는 동안 에너지 복합체인 사람의 영혼이 주위 환경과 부조화 속에 처해 있을 때 일어나는 일이야. 부조화의 정도가 지구 존재에 위험할 정도이면 그래. 부조화가 임계점을 넘지 않아야, 망자의 영혼이 복합체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어. 조화로운 영혼일수록 우선적으로 지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 유감스럽게도 그 숫자는 우주 공간에 점점 더 줄어들고 있어, 프로그램은 지금 악에서 더 나은 것을 선택하고 있어.

 

- 만약에 나의 가문에서 모은 영혼이 입자들로 와해되었다면, 그럼 내가 심은 가문의 작은 숲을 찾아올 영혼이 하나도 없겠네?

 

- 블라지미르, 당신이 존재하는 이상, 당신의 가문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어.

 

- 가원에 사람이 묻히면 무슨 일이 일어나지?

 

- 사람이 스스로 가꾼 가원에 묻히면, 그의 영혼은 우주의 암흑으로 떨어져 나가지 않고, 가원에 남게 돼. 그곳에서 나무를 심고 땅과 소통했으니까.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지만 느낄 수는 있는 영혼은 자기에게 식물들이 주는 온기를 느낄 수 있어. 그리고 또한 사람들, 가원에 사는 이 사람은 후손들이 그가 지은 것들과 접촉하며 더 자주 그를 추억 할 거야.

 

- 아나스타시아, 이런 일이 있었어. 내가 아는 사람들이 사는 가원에 노쇠한 엄마가 온 거야. 연세가 여든을 넘었지. 며칠 머물 생각으로 온거야. 자기 딸의 가원을 구경하러 온 거지. 가원이 도대체 뭔가 남편하고 생각했대. 그런데 나중에 아주 남아서 살고 싶다고 했대. 그렇게 남게 되었고 엄마는 긴 의자에 한참씩 앉아 있곤 했고, 가끔 가원의 숲을 걸었다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딸과 사위한테 이렇게 말했대. <내가 죽으면 나를 공동묘지에 버리지 말고, 이곳에 묻어줘> 그리고는 자기가 고른 장소를 보여줬대. 이 나이든 노인이 죽자, 딸과 사위는 엄마의 청을 들어준 거야. 이 노인의 영혼은 어떻게 되는 거야? 노인은 가원에 심은 게 아무 것도 없거든.

 

- 엄마가 긴 나무의자에 앉아만 있었어도, 그녀의 영혼은 가원에 남아. 엄마가 손수 가원에 묻히기를 원하였다면, 죽기 전에 그걸 생각했다는 의미이고, 그녀의 혈육이 그녀가 잠들어 있는 곳을 공동묘지보다 더 자주 찾아올 것이고, 더 자주 그녀에 대한 생각을 할 거야.

사람의 의지를 거역하여 그 사람을 가원에 매장해서는 안돼. 그 사람이 가원에서 무엇이든 했다 해도 안돼. 그런 일이 만일 일어난다면, 그에게 받드시 용서를 구하고, 그가 묻힌 곳으로 와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으로 성명을 하고, 그의 도움을 요청해야 해.

 

- 그렇군, 재미있는 상황인걸. 아나스타시아 과거의 사람들이 이걸 알고 이해했을까?

 

- 물론, 알았어. 블라지미르. 불과 멀지 않은 과거에도 가문의 광혈(壙穴)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많아. 당신도 알잖아. 그보다 훨씬 전 과거에는 공동묘지란 건 없었어. 가문의 땅을 전혀 갖지 못한 사람들이 나타나자 생겨난 거야. 도시에 사는 수공업자, 몸종, 하인, 용병 등이 이런 부류이지.  이들이 죽으면 매장할 필요가 생겼고, 그래서 그 시신들을 실어다, 병든 짐승을 묻던 쓰레기 구덩이에 일가친척 없이 버렸던 거야. 또는 함께 묻는 구덩이에 매장을 하던가. 더 나중의 시기에, 도시가 더 커지고 부자외 다양한 부류의 가족이 살게 되고, 그때 공동묘지가 생기기 시작했어. 부유한 사람들은 크지 않은 땅을 사서, 거기에 죽은 혈육들을 매장했지. 그 주변에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행위를 하였고, 후에 공동묘지는 구분이 되기 시작했지. 요새 말로 얘기하자면, 고급이니, 중급이니, 아니면 하인들을 위한 하급이니 하는.

 

 


아나스타 중(아나스타시아 10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