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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시아

데몬크라시

by 열린공간 2018. 6. 5.

대오를 지어 늘어선 노예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어. 각각의 노예들은 잘 연마된 돌을 날랐지. 네 줄의 대오는 그 길이가 각각 1.5킬로미터, 채석장에서 성곽-도시 공사가 시작된 곳까지 늘어서 있었어.

 

이들은 초병들의 감시를 받았어. 노예 열 명당 무장한 전사 - 초병이 1명이었어. 걷는 노예들로부터 떨어져 잘 다듬은 돌로 쌓은 30미터 높이의 인공의 산 정상에 크라시가 앉아 있었어. - 최고 신관 중 한명이었지 : 4개월에 걸쳐 그는 잠자코 진행되는 일을 관측하고 있었어.

 

아무도 그의 주의를 빼앗지 않았고, 그의 깊은 생각을 시선으로조차 감히 방해하지 못했어. 노예들과 초병들은 정상에 권좌가 있는, 인조의 산을 주변 풍광과 뗄 수 없는 하나로 인식했어.

 

권좌에 꼼짝 않고 앉아 있거나 때론 산의 정상 마당에서 서성이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어. 크라시는 국가를 재편하고 지구의 모든 사람들을 복속시켜 그들 모두를 여러 나라의 통치자들을 포함한 모두를 자기들의 노예로 만들고 신관의 권력이 천년 지속토록 권력을 공고히 할 과제를 풀고 있었던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크라시는 권좌에 자기와 똑같이 닮은 사람을 대신 앉히고 아래로 내려왔어. 신관은 옷을 바꿔 입었고 가발을 벗었어. 초병들의 지휘관에 명하여 여느 노예와 다름없이 자기를 사슬로 묶고 젊고 힘센 나르드란 노예 뒤 대오에 세우도록 했어.

 

노예들의 얼굴을 주의 깊게 살펴보며 이 젊은 노예의 시선은 많은 사람들의 자신 없고 포기한듯한 시선과 달리 호기심과 경계의 시선임을 크라시는 알아차렸지. 나르드의 얼굴은 생각에 깊은가 하면 격앙되기도 했어. <<그렇군, 저 친구는 뭔가 자신의 계획을 수립 중이야>> 신관은 알아차렸어. 그렇지만 자신의 관찰이 얼마나 정확한지 확인해보고 싶었어.

 

크라시는 이틀 동안 나르드를 주시했어. 말없이 돌을 나르며, 식사 시간에는 그의 곁에 앉았고, 굴속에서 잠도 같이 잤어. 3일째 밤 <<취침!>> 명령이 내리자마자 크라시는 젊은 노예 쪽으로 돌아누워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게 씁쓸하고 절망적인 속삭임으로 말을 던졌어.

 

<<여생 내내 계속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신관은 보았지 : 젊은 노예가 소스라치더니 순간 얼굴을 신관 쪽으로 돌렸어. 그이 눈은 번뜩거렸어. 큰 막사의 침침한 등불 아래에서도 그 눈은 광채를 발했어.

 

- 그렇게 오래가지는 않을 거요. 난 계획을 정리 중에 있소. 노인, 당신도 그 계획에 동참할 수 있소. - 젊은 노예가 속삭였어.

 

- 어떤 계획을? - 관심 없는 듯 한숨을 내쉬며 신관이 물었어.

나르다는 뜨겁고 자신 있게 설명을 시작했어.

 

- 노인장 당신도 나도 그리고 우리 모두는 곧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 될 것이오. 노인장, 세보시오 : 노예 열 명당 초병은 한 명 꼴이오. 음식을 하고, 옷을 짓는 여자 노예 15명을 초병 한 명이 감시하고 있소. 약정한 시간에 우리 모두가 한꺼번에 경비를 덮치면 승리는 우리 것이오. 초병들은 무장을 했고, 사슬에 묶여 있지만, 우리 열 명이 한 명을 감당하면 되고, 사슬도 칼을 막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소. 우리가 초병 모두를 무장해제시키고 포승하고 무기를 취할 수 있소.

 

- 에휴 젊은이 - 크라시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무관심한 듯 내뱉었다. - 자네의 계획은 설익었어 : 우리를 감시하는 초병들은 무장해제 시킬 수는 있겠지만 통치자는 곧 새 병력을 심지어는 대군을 보낼 수도 있소. 봉기한 노예들을 죽일 것이외다.

 

- 노인장 난 그것도 생각해 두었소. 군대가 없는 때를 택해야 하오 이 시간은 곧 생길 거요. 군대가 원정을 준비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보고 있소. 3개월 장정에 필요한 군량을 준비하고 있소. 그 의미는 3개월 후 군대가 지정한 장소에 당도하여 전투에 돌입한다는 뜻이오. 전투에서 군은 힘을 잃을 것이지만 승리하고 수많은 새 노예들을 포획하게 될 것이오. 이들을 수용할 막사를 벌써 짓고 있소. 우리 통치자의 군대가 다른 군대와 전투에 돌입하는 순간 우리는 초병들 무장해제를 개시해야 하오. 당장 회군해야 한다는 통보를 파발꾼이 전달하라면 한 달이 걸리오. 기력이 쇠진한 군대가 돌아오는 데는 3개월 이상이 소요되어 넉 달 동안 우리는 이들을 맞을 준비를 할 수 있소. 우리의 수는 군대의 병력보다 적지 않을 것이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면 포획된 노예들은 우리 편에 서게 될 것이오. 나는 모든 걸 사전에 다 정해 놓았소. 노인장.

 

-그렇군. 젊은이 자네의 계획과 생각으로 초병들을 무장해제 하고 군대와 싸워 승리를 거둘 수 있겠소. - 이제는 기를 세워주려는 듯 신관은 답했어. 그리고 덧붙였지.

- 그 다음에는 노예들이 무슨 일을 하지? 통치자들, 초병들, 병사들은 어떻게 되는 거요?

-그 생각도 조금 해보았소. 아직은 한 가지 생각뿐이오. : 노예였던 사람들 모두는 노예에서 벗어날 것이고 지금 노예가 아닌 모두는 노예가 될 것이오. - 소리 내어 생각하듯 나르드는 자신 없이 대답했어.

- 그럼 신관들은? 젊은이 말해보오 자네가 승리하면 신관은 노예가 되오? 아니면 비노예가 되오?

- 신관이요? 그 생각은 못 해봤어요. 지금 생각으론 신관은 지금과 같이 남겨두지요. 뭐 노예들, 통치자들이 신관의 말을 들으니까 신관들은 때론 이해하기 어렵지만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오.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라고 하지 뭐 어떻게 사는 게 더 좋은지는 우리 스스로가 알고 있소.

 

- 더 좋게라.... 그거 좋군 - 신관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잠이 쏟아지는 척 시늉을 했어.

 

- 하지만 크라시는 그날 밤을 자지 않았어. 생각에 잠겼지. 물론 - 크라시는 생각했어. - 통치자에게 음모를 고하는 게 가장 간단해. 그러면 젊은이 - 노예를 체포하겠지. 이 젊은이가 분명 다른 사람들을 부추기는 최고 주동자야.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아. 노예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는 항상 노예와 함께 할 거야. 선도자들이 다시 생겨날 거고 계획이 새로 입안되겠지. 그러한 이상 국가에 대한 최고의 위협은 항상 국가 내부에 존속할 거야. 온 세상을 노예화하는 계획 수립이 크라시 앞에 놓인 과제였어. 그는 알고 있었어 : 물리적인 폭력만으로는 목적을 이룰 수 없어. 모든 사람에게, 온 나라 사람들에 심리적 영향력 행사가 절대 필요해. 사람들의 생각을 개조하여 노예제도가 최고의 선이라는 점을 모든 사람의 뇌리에 못 박아야 해. 온 백성들이 공간, 시간, 개념 감각을 상실하게 만드는 그리고 또 스스로 개선되는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실제에 대한 적절한 인식에서 방향감각을 상실토록 하는 것이야. 크라시의 생각은 점점 더 빨리 작동했어. 이제 그의 몸은 느낌을 잃었어. 손과 발에 채운 무거운 족쇄를 느끼지 못했어. 그러다 갑자기 번개의 섬광처럼 프로그램이 떠올랐어, 아직 상세하지 못하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미 느껴지고 그 웅장함에서 태울 정도로 뜨거운 것이었어. 크라시는 자신이 온 세계의 유일한 통치자임을 느꼈어.

신관은 족쇄에 묶인 채 굴 속에 누워서 날 것처럼 기뻤어 : <<내일 이침 모두를 일터로 데리고 나갈 때 내가 미리 정한 신호를 하면 감시 대장이 명령하여 나를 노예의 대영에서 빼내어 족쇄를 풀어주겠지. 나는 프로그램을 상세화할 것이고 몇 마디 말을 발설하기만 하면 세상이 바뀌기 시작할 거야. 믿기 어려워! 고작 몇 마디 말로서 온 세상이 내게 나의 생각에 복속될 거야. 하느님은 정말 사람에게 우주에 대적할 게 없는 힘을 주었어. 그 힘이란 - 사람의 생각이지, 그것은 말을 낳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지.

 

절호의 기회가 왔어. 노예들은 들고 일어설 계획을 세웠어. 그 계획은 합리적이야. 그리고 분명 노예들에게 좋은 감정적 결과를 낼 거야. 하지만 나는 고작 몇 마디 말로서 노예들은 물론이고 오늘 노예들의 후손들 게다가 지상의 통치자들도 앞으로 수천 년 간 노예가 되도록 만들거야.>>

 

아침, 크라시의 신호에 따라 감시 대장은 크라시의 족쇄를 풀었어. 그리고 벌써 그 다음 날 크라시의 감시 마당으로 나머지 다섯 신관들과 파라오들도 초청되었어. 모인 사람들 앞에 나서서 크라시는 연설을 시작했어 :

- 지금 여러분이 듣게 될 것은 누구도 기록하거나 전달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주변에는 벽도 없어서, 내 말은 여러분 외에는 그 누구도 듣지 못합니다. 나는 지구에 사는 사람 모두를 우리 파라오의 노예로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이것은 수많은 군대와 힘겨운 전쟁으로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난 그것을 몇 마디 문장으로 할 수 있습니다. 내말을 발설한 후 고작 이틀이 지나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보십시오 : 저 아래에선 쇠사슬로 묶인 노예들의 긴 대열이 돌을 하나씩 나르고 있습니다. 여러 병사가 이들을 감시합니다. 노예가 많을수록 나라에 좋다고 우리는 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노예가 많을수록 그 노예들의 폭동을 더 걱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감시를 강화합니다. 우리는 노예를 잘 먹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노예들은 힘든 육체노동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노예들은 여전히 게으로고 폭동을 노립니다. 보십시오 : 저들의 움직임이 얼마나 느립니까. 그렇지만 게을러진 초병은 채찍을 휘두르지 않고 심지어는 건강하고 힘센 노예들조차 때리지 않습니다. 저들은 훨씬 빨리 움직이게 될 겁니다. 감시도 필요 없어집니다. 초병들도 노예가 됩니다. 이렇게만 하면 됩니다.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 전령관들로 하여금 이런 내용의 파라오 칙명을 퍼뜨립니다. <<새날이 밝으면 모든 노예들에게 완전한 자유를 베풀 것이니라. 도시로 운반한 돌 하나하나에 대한 대가로 자유인은 동전 한 닢을 받게 될 것이다. 동전은 음식, 의복, 주거, 도시에 있는 대궐 그리고 도시 자체와 교환 가능하다. 이제부터 당신들은 자유인이다.>>

신관들이 크라시가 한 말의 뜻을 깨닫고는, 그 중 나이가 가장 연로한 신관이 말했어 :

-자넨 데몬이야. 크라시! 자네의 구상은 지상의 수많은 민족을 데모니즘으로 덮어버릴 거야.

-나를 데몬이라 하라지요. 내가 구상한 것을 사람들이 앞으로 데몬 크라시라 부르라지요.

 

해질 녘 칙령이 노예들에게 공표되자 노예들은 놀랐어. 행복한 새 삶을 깊이 생각하느라 많은 이들이 잠을 이룰 수 없었어.

 

다음 날 아침 신관들과 파라오는 다시 인간이 만든 산의 마당에 올랐어. 이들의 시선에 펼쳐진 그림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어. 과거의 노예였던 수천의 사람들은 전과 똑같이 돌을 앞 다투어 날랐어.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돌을 두 개씩 나르는 사람도 많았어. 돌을 하나씩 나르는 다른 사람들은 먼지를 일으키며 뛰었어. 초병들 중 일부도 돌을 날랐어. 족쇄가 풀렸으니 자신을 자유인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행복한 삶을 짓기 위해 가능한 더 많은 갈망하던 동전을 얻으려 애썼어.

 

크라시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만족스레 바라보며 자신의 마당에서 몇 달을 더 보냈어. 변화는 엄청난 것이었지. 노예 중 일부는 소규모 집단으로 연합하여 마차를 만들고 돌을 높게 싣고는 비 오듯 땀을 흘리며 마차를 밀었어.

<<저들은 더 많은 보조기구들을 만들 거야. - 크라시는 만족스럽게 속으로 생각했어. - 내부에는 벌써 서비스업이 생겨났는걸 : 물과 음식 배달부가 생겼어. 노예 중 일부는 음식을 먹으러 막사에 가는 시간을 줄이려고 걸으면서 식사를 하네. 그걸 배달한 사람한테는 번 동전으로 값을 치렀고. 놀랍군. 약사도 생겼어 : 부상자들에게 걷는 와중에 도움을 줘, 그것도 동전을 얻기 위해서지. 교통 정리자도 선출했구만. 머지않아 자기들의 상관 판사도 선출하겠지. 선출하라지 : 저들은 자신들이 자유인이라 여기고 있으니까. 하지만 본질은 바뀐 게 없어 저들은 여전히 돌을 나루고 있으니...>>

 

저렇게 저들은 수천 년의 세월에 걸쳐, 먼지 속에서, 땀에 흠뻑 젖어, 무거운 돌을 나르며 뛰고 있어. 그리고 오들도 저 노예들의 후손은 계속해서 의미 없는 뜀박질을 하고 있어.

 

 

  아나스타시아 8권 중...